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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998년 겨울이었다. 당시 중학교 3년이었던 나는 고교진학을 결심하였다. 아니 자연스레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 동네는 원하는 고등학교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쳐서 가는 방식이었다. 어찌보면 참 잔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험까지 마친 나는 고등학교 입학식까지 자유를 만끽하였다.
아마 그맘때부터 대한민국에 PC방이 등장하기 시작하었다. 그해 여름에 스타크래프트라는 혁명적인 게임이 발매되었고, 곳곳에는 스타크래프트를 하기위해 인터넷이 되는 PC방을 찾는 사람들로 난리였다. 게임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나는 자연스레 친구들과 PC방을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다.
그렇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너무나 무겁다. 집에 있는 컴퓨터는 인터넷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해도 모뎀을 사용한 PC통신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에듀넷이 대세였다. 그들은 마치 영원할 것만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부팅한다. 그 순간부터는 우리 집전화는 통화중이다. 새롬데이타맨을 실행시키고는 01410을 주저없이 입력한다. 감미로운 모뎀 접속음이 들린다. 띠띠띠~지직~지직~♪
나는 아버지의 하이텔 아이디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정작 별로 사용하시지 않았기에 내가 독점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모르신다.
하이텔이 나를 보며 Hi~ 하였다.
GO 13
대화방 입장~! 당시만해도 대화방은 정말 건전하였다. 요즘처럼 욕방,성매매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말 순수하게 대화를 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컴퓨터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거 자체가 신기한 때였으니 말이다. 참 순수했던 시절이다. 그곳은 정말 소울메이트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악랄가츠님이 입장하였습니다.
'방가방가~'
'방가방가~'
'가츠님 소개부탁해요~!'
'경북사는 16살 남자예요~!'
'님하 죄송~! 대딩방임~!'
이쁜누나님께서 악랄가츠님을 강퇴하였습니다.
개뿔~ 소울메이트 좋아하네... 그때도 강퇴는 존재하였다. 그렇게 강퇴당한 나는 게임이나 다운받을려고 자료실로 갔다. 그러다가 숫자를 잘못입력하여 머드,머그게임란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때 나의 눈에 확들어온 카피가 있었으니. 세계최초무협 온라인게임 '영웅문'
당시 무협지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구미가 땡기는 글이었다. 뭔가 싶어서 들어가보니 그래픽 온라인 게임이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온라인게임 강국이지만 당시에는 온라인게임이 별로 없었다. 아마 그때 리니지가 정식으로 오픈될 시점이었다. 영웅문을 클릭하니 경고문구가 뜬다.
본 서비스 이용에는 분당 30원의 정보이용료가 발생합니다.
잠깐 해보는건데 뭐~! 어차피 잠깐 해보는건데 무슨일 있겠어? 그렇게 약관 16세의 무협지를 좋아하던 어린 소년은 세계최초무협 온라인게임 영웅문에 첫 발을 딛었다.
맙소사~! 이건 신세계였다. 나만의 케릭터를 컨트롤하면서 몹을 잡고 무술을 익힌다. 또한 문파에 가입하여 문파원들과 교류하며 상대방 문파와 치열한 전쟁을 펼친다. 당시에는 모든게 처음이었기에 게임상의 제약도 별로 없었다. 그냥 무제한으로 상대방을 죽일 수 있고, 죽이면 모든 아이템을 뺏아올 수 있었다.
또한 무협지에서처럼 강하기만 하면 혼자 수십명의 유저들을 다 죽일 수 있었다. 당시 접속하였을때 많은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서 웅성웅성되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흑마교소속의 향숙이라는 케릭터가 마을입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족족 원샷원킬하고 있었다. 행여 운좋게 피해서 도망이라도 친다면 어김없이 뒷통수를 향해 장품을 날렸다.
아악~ 아악~! 아악~!
극강의 무림 여고수 한명으로 인해 수십명의 유저들이 죽어나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게임이야~! 마치 무협지에서나 나올법한 내용이 눈 앞의 모니터 화면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마 이때부터 악랄가츠의 시조격인 고스트킬러가 등장하였다. 나름 머리를 굴려서 만든 아이디였다. 유령처럼 다가가서 죽여주마~!
향숙이의 무차별 공격에 얼마나 죽었을까? 이내 흥미가 떨어진 향숙이는 그 곳을 떠났다. 남은 우리들은 이제 살았다며 안심하였다. 그리고 열심히 수련하여 꼭 강해지자고 다짐하였다.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몹을 잡으며 내공을 쌓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잡은 몹에서 한 권의 무공책이 떨어졌다.
'저건 전설의 비천혈풍법이 아닐까?'
'저녀석이 먹었어~!'
조금전까지만 해도 같이 열심히 수련하여 향숙이에게 복수하자고 하였던 사람들은 눈앞에 떨어진 한 권의 비급에 모두 이성을 잃었다. 비급을 먹은 내 주위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눈치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참히 나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아악~! 나의 고스트킬러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는 죽었다. 그리고는 떨어진 무공책, 한 권의 무공책을 두고 다시 그들은 피비린내 나는 결투가 시작되었다.
나는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키보드자판 위로 한방울의 액체가 떨어졌다. 어린 소년의 뜨거운 눈물, 나는 그날 인간이 얼마나 비열한 족속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한달동안 우리 집접화는 통화중이었다. 정말 밤잠을 설쳐가며 밤새 게임만 하였다.
한 달후, 나의 고스트킬러는 극강의 케릭터가 되었고, 그 날 현장에 있었던 유저들만 찾아다니며 복수를 하였다. 어느덧 영웅문 세계에서 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내가 가는 곳은 지옥이었고, 언제나 시체만 즐비하였다.
'하하하 내가 최고다~!'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엄마가 들어오셨다.
'야! 전화비가 왜케 많이 나왔어~! 이리와~!'
'아악~! 엄마 내가 누군지 알어~! 나 고스트킬러야! 왜 이래~! 받아라 장풍~!'
'고스트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오냐 오늘 유령으로 만들어주마~! 퍼퍽~!'
얼마나 맞았을까? 신나게 맞고 몸을 추스리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퇴근하셨다.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울면서 인사를 드리러 나갔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뭐가 그리 더우신지, 연신 종이를 들고는 얼굴에 부채질하고 계셨다.
팔락팔락~! 쉴새없이 움직이는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바로 하이텔 요금 고지서였다. 당당하게 32만원이 찍혀있었다.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날 이후로 무림고수 고스트킬러는 영영 볼 수 없었다.
추천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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