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글보기
오늘은 일병때 파견나가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05년 10월, 우리 중대는 여전히 523탄약고에서 경계지원을 해주고 있다. 지난 시간 중대장님의 얼차려로 인해 해이해진 군기강도 다시 번쩍 돌아왔다. 중대원들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고, 별다른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경계파견 중이기 때문에 우리는 근무만 착실하게 서면 되었다. 또한 탄약고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도 없고, 낮에는 부대관계자들이 가끔 오기도 하지만, 야간에는 아예 아무도 오지 않는다. 물론 정위치에서 정자세로 근무를 서지만, 너무 심심하였다.
종종 근무를 서다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내가 근무를 서고 있을때, 거수자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럼 멋지게 제압하여 지휘관님께 칭찬받고 포상휴가를 가는 상상을 많이 하였다. 하지만 주둔지도 그렇고 경계파견을 나가는 곳도 그렇고, 민간인이 절대 출입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헛된 꿈이었다.
거수자가 안와도 포상가는 방법이 있다. 근무중 지휘관이 순찰왔을때, 멋진 근무 브리핑보고를 하면 종종 모범케이스 삼아 보내주시기도 한다. 안그래도 말년에 후임 녀석이 작업하기 싫다며, 근무를 나갔는데, 하필 그때 연대장님이 순찰로 점검을 하러 오신거다. 이녀석은 완벽하게 근무 브리핑을 하였고, 후임 근무자까지 덤으로 다음날 포상휴가를 나갔다. 하지만, 지금 가츠 일병이 있는 곳은 탄약고이다.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다.
그날은, 초저녁부터 자정까지 근무를 서는 전반야 근무에 투입되었다. 확실히 기억은 안나는데 18시부터 24시까지, 1시간 30분씩 밀어내기 방식으로 근무를 선다. 쉽게 설명하자면 1,2,3,4 초소가 있는데 만약 18시에 3초소에 투입되었으면 1시간 30분후 4초소로 걸어가서 4초소 근무를 서다가 다시 1시간 30분후 1초소로 투입~! 이런식 한바퀴 도는 방식이다.
첫 투입을 3초소에서 시작하였다. 근무 파트너는 한달 고참 심일병이었다. 완전 친하고 편해서 마치 동기랑 같이 근무서는 기분이었다.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열심히 시간을 떼우고 있었는데 날라오는 무전,
'전 근무병력 잘 듣기바람~! 현재 탄약고 뒷산에서 79연대 RCT가 진행중이다. 금일 저녁 군단장 순시가 예정되어 있으니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경계작전에 임해주기 바란다. 다시 반복한다. 원스타도 아니고 투스타도 아니다. 쓰리스타, 3성장군이 오실 수 있으니 전원 실수하지마라.'
와우~! 대박이다~! 3성장군이라~! ㄷㄷㄷ 지금까지 본 최고의 군계급은 신교대에서 만난 사단장이었는데, 사단장님보다 더 높은 사람을 만나게 되다니 와우~! 놀라울 따름이다.
'심일병님~! 우리 군단장님 만나면 브리핑 제대로 해서~! 포상 나가자구요~!'
'오케~! 야 말빨은 니가 좋으니깐 니가 하도록해~! 연습해보자~! 내가 군단장 역할할께~! 자자 걸어온다~! 어흠~!'
'이기자~! 근무중 이상무~! 당초소를 방문해주신 군단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초소 523탄약고 1초소로서 77연대 5중대 일병 가츠, 일병 심OO이 18시부터 19시 30분까지 경계근무를 명받았습니다. 당초소의 휴대장비로는 K2 소총 2정,대검, 포승줄, 5.56mm 공포탄 10발들이 한탄창씩을 일반장전한채 휴대중입니다. 통신장비로는 P-96K를 휴대하여 상황발생시 신속하게 상황실에 통보하며 거수자를 제압합니다. 기타 관측장비로는 야간투시경이 있으면 주경계방향으로는 일병가츠는 좌측 상황실로부터 우측 위병소까지이며, 일병 심OO은 우측 위병소부터 좌측 2초소까지 360도 및 대공감시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있으시면 질문하여 주십시오~! 이상입니다~!'
'으음 그래~! 자네 수통에 물은 충만한가?'
'아나 심일병님 쓰리스타가 수통에 물 충만하지 물어보겠습니까?'
'하하~! 야야 오히려 그런거에 더 민감할지도 몰라? ㅋㅋㅋ'
그렇게 심일병과 계속 보고놀이에 열중하였다. 사실 브리핑에는 정석이 없다. 어떤 간부는 주경계방향부터 먼저 말하라고 하고, 다른 간부는 휴대장비부터 먼저 말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감있게 당당하게 말하면 되는 것이다. 문득 고민이 생겼다.
'심일병님~! 근데 지금 야간이지 않습니까? 그럼 군단장님 오면 수하해야됩니까?'
'헐... 그러게~! 수하 당연히 해야되는데.. 군단장이 암호를 외우고 다닐까?'
'그지말입니다? 그래도 일단은 하는 걸로 하지말입니다~! ㅋㅋㅋ 우리 포상가는구나~! ㅋㅋㅋ'
그렇게 우리끼리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4초소를 거쳐서 1초소까지 투입되었다. 1초소는 가장 처음 통과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군단장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때 울리는 무전교신
'잘들어라~! 중대장이다~! 현시간부로 군단장님께서 위병소를 통과하셨다. 전 근무인원은 정말 실수없이 경계작전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한다. 이건 명령이다~! 중대장은 너희들을 믿는다~!'
아... 긴장감이 엄습해온다. 막상 현실로 닥치니 떨리고 두렵다. 괜히 발음꼬이는건 아닐까? 괜히 내가 보고한다고 한건가? 따지고 선임근무자인 심일병이 해야되는데 말이다. 지금와서 또 안한다고 미룰수도 없고, 아 미치겠다 ㅜㅜ
이때~! 위병소에서 차량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한무리의 레토나 대열이 등장하였다.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번쩍번쩍 빛나는 차량 번호판. 그것은 성판이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금 6만여명의 병사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군단장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5만명의 군병력이라고 생각해봐라. 그의 말 한마디에 산이 하나가 아니라 수십개가 한번에 사라질수도 있고, 날아가는 새 수천마리를 손가락질 한번에 떨어뜨릴수 있는 절대 권력자.
'가츠야 준비됬나? 아 왜케 떨리지?'
'네 완벽합니다~! 조국을 위하여~! 중대장님을 위하여~! 포상을 위하여~!'
전방 50M
전방 30M
전방 10M
두둥~! 우리는 군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각을 잡고, 군단장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계자세를 취하며 암구호를 외칠려고 하는 순간,
군단장님의 차량은 보란듯이 속도를 높혀서, 우리 곁을 유유히 지나가버렸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위병소가 아니었다. 그냥 도로 옆에 있는 탄약소 초소일뿐이다. 그냥 가면 끝인거였다 ㅜㅜ
'심일병님..... 그냥 가버렸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그냥 지나가버렸구나... 무심하게... 뭐가 그리 바쁜가 말인가?'
'흑... 내 포상휴가,,,,'
그렇게 군단장이 지나갔다고 상황실에 보고하였고, 이윽고 2초소에서 지나갔다는 통보가 왔다. 그리고 훨씬 후방에 위치한 7,8초소에서 아무일 없이 지나갔다는 통보가 왔다. 그제서야 중대장님은 안심하셨다.
포상휴가의 야무진 꿈은 허무하게 날아갔다.
반응형
'가츠의 군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대이야기를 포스팅하면서 다시 만난 사람들 (174) | 2009.06.27 |
---|---|
가츠의 군대이야기, 연대장 (349) | 2009.06.26 |
가츠의 군대이야기, 중대장 (231) | 2009.06.24 |
가츠의 군대이야기, 쓰레기소각 (191) | 2009.06.23 |
가츠의 군대이야기, 향방작계 (246) | 2009.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