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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상병때 있었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7월, 상병말이자 신임 분대장으로서 한창 잘 나갈 때이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갓 분대장으로 취임한 나는 요리조리 농땡이 피울 생각만 하였지만, 그래도 맡은 임무는 완벽하게 수행하여 간부들에게 든든한 신임을 받고 있었다.
당시, 강원도의 날씨는 가히 폭염수준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나고 현기증이 왔다. 이런날에 나가서 작업을 하거나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러나 날씨가 덥다고 군인들이 피서를 떠나거나 쉴 수만은 없는 것이다. 춥거나 덥거나 항상 무언가를 하는 곳이 군대다.
아침을 먹고, 언제나처럼 중대원들은 중대사열대 앞에서 모여서 그날 작업을 지시받고 있었다. 대열의 첫줄은 항상 분대장들이 위치하고 있다. 나는 앞줄에서 껄렁껄렁거리며 분대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대열의 후미에는 분대장자리를 이임하고 전역날짜가 세고있는 말년 병장들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이들은 이미 군인이 아니다. 그냥 좀비들이다. 정신은 이미 사회에 나가있고, 몸만 군복을 걸친채 부대에 있는 것이다.
곧 행보관님이 오시더니 오늘 있을 작업에 관해 브리핑하기 시작하였다.
'아따 아침부터 푹푹찌네~! 날이 더우니 개인관리 철저히 할 수 있도록 하고, 오늘은 대대탄약고 보수작업과 제초작업을 할것이니, 장비들 챙기고 대기하도록~!'
아나 하필 오늘같은날 대대탄약고 보수랑, 제초작업이냐~! 더워죽겠구만, 그늘도 없는 곳에서 종일 작업하게 생겼네, 또한 간부들이 늘 지나가는 곳이라 농땡이도 제대로 피울 수 없다. 벌써부터 급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참, 중대 쓰레기 좀 태워야 되는데 소각작업 하고 싶은 사람?'
쓰레기 소각작업? 군대도 사회처럼 엄청난 쓰레기가 나온다. 물론 일반 쓰레기는 완벽한 분리수거와 정리로 간단하게 밖으로 배출하여 처리하지만, 군용 쓰레기는 함부로 버릴 수 없다. 못쓰는 폐품기자재, 교범, 교본, 각종 서류등은 밖으로 유출되면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렇다고 일반 병사들이 태우는 것도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 관련 법규에 따라 처리해야되지만, 그것또한 너무 양이 방대하고 처리하는데 불편함이 있기때문에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 소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뒤에 좀비처럼 있던 김병장이 나에게 기어오더니, 옆구리를 푹 찔렸다.
'가츠야~ 우리가 소각하자~! 그늘에 앉아서 태우기만 되잖아~! 완전 편할 거 같애~!'
'음.. 하긴 불장난 재밌죠? 오케이 저희가 합시다~!'
그렇게 행보관님께 나랑 김병장, 김일병 3명이서 소각작업을 하겠다고 건의하였고, 임무를 맡았다. 김병장과 나는 좋아라하면서 대대탄약고 후문을 통해 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불행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사실 딱히 소각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산속에서 불을 피워서 태우는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예전에 태우다 남은 쓰레기 남아 있었고, 행보관님의 지시에 후임들은 창고에서 쓰레기를 가지고 오고 있었다. 상급부대에서는 모르게 하는 작업이다 보니 한번 날잡고 태우면 끝장을 보아야한다. 자주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병장님, 이정도면 널널하게 해도 되겠는데 말입니다~!'
'거봐라~! 완전 편하다니깐~! 쓰레기 툭툭 던져주면 끝이잖아~!'
게다가 나는 김일병까지 데려오지 않았는가? 하하 순전히 이녀석 다하는 것이다. 김병장은 벌써 나무 밑 그늘에서 시체가 되어버렸고, 나는 김일병을 붙자고 죽어라 잔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김일병이 고생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곳에 가서 작업하고 있다면, 이것보다 훨씬 힘든 일을 할텐데, 나에게 픽업되어 오히려 훨씬 편하게 있는 것이다.
'김일병~! 너무 많이 태우지마~! 오전에 다 끝나면 오후에 할게 없잖아~! 너는 생각좀 하고 살어~!'
'아~! 그렇군요~! 역시 가츠병장 잔머리는 최고입니다~! ㅋㅋ'
그렇게 쓰레기를 태우며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그늘에서 딩가딩가 즐겁게 오전을 보냈다. 점심먹을때가 되자 김병장은 먹기 싫다면서 우리끼리 먹고 오라고 하였다. 김일병과 가볍게 한번 땅바닥을 뒹군후, 마치 종일 산불진화를 한 소방수처럼 힘든 기색을 보이며 내려왔다. 이를 본 행보관님은 흐뭇하게 우리를 격려해주었다.
다시 시작된 작업, 이거 너무너무 널널하다. 이렇게 빵실하게 하루를 보내는구나~! 좋아라하고 있던 찰나, 대대탄약고 후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오는 기척이 들렸다. 놀라서 쳐다보니 6중대 아저씨들이었다. 손에는 쓰레기들을 가득들고 말이다.
'어~! 아저씨들도 소각작업하러 왔어요?'
'아니요. 저희 행보관님이 5중대 소각작업한다고 갖다주라던데요~!
헐.. 뭥미~! 짬된건가? ㅜㅜ 당시 우리중대 행보관님이 가장 서열이 낮았다. 고로 타중대 행보관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고, 사실 이정도는 뭐 이해할 수 있다. 돕고사는 세상이니깐 말이다. 그런데~! 뒤이어 줄줄이 밀려오는 병사들이 눈에 보였다. 7중대, 8중대, 본부중대까지 어느덧 대대 전체의 쓰레기가 우리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아낰ㅋㅋㅋ
일과시간은 다 끝나가는데 까딱하다가는 이거 저녁까지 하게 생겼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나는 김병장까지 다독거려서 마구마구 쓰레기를 태우기 시작하였다.
'야 이거~! 기필코 5시까지 다 태워야된다~! 김일병 머해~! 다 때려박어~!'
'우왕 가츠병장님 너무 뜨거워요~! 불 겁나 커~! ㅋㅋㅋ'
한여름, 우리는 초대형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일과시간이 다 끝나가고 있었다. 부대 저편에서는 작업나갔던 중대원들이 복귀하고 있었고, 나는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김병장도 매한가지였다. 연신 옆에서 신나게 태우고 있었다. 불길은 점점 거세졌고, 불기둥은 하늘높이 치솟아올랐다. 음 좋아~! 이정도면 순식간에 다 태울수 있겠군~! 우하하~!
바보 3형제는 뿌듯해하면 좋아하는 찰나~! 시원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왔다~! 아 시원하다라고 느끼는 찰나~! 불기둥의 불이 바람에 흔들려 주위에 있던 나뭇가지에 옮겨붙는게 아닌가?
●█▀█▄ X됐다~!
이거 완전 구속감인데? 여기서 난 구속되는건가? 불법쓰레기소각, 군정보기밀유출, 산불유발 등등 죄목이 도대체 몇개야? 다급해진 우리는 근처에 있는 중대후임에게 외쳤다.
'야야야아~! 불났다~! 빨리 불끄러 오라고 해라~!'
사태를 파악한 후임녀석은 쪼르르 내무실로 뛰어들어갔고, 곧이어 바가지와 세숫대야, 수통, 방화수통을 컵라면용기(?)을 들고 전 중대원들이 뛰쳐나왔다. 아 사실 쵸큼 멋있었다. 마치 어렸을때 본 만화책 주인공들 같았다. 나무 한그루에 100여명의 군인들이 달라붙었고~! 곧 무사히 진화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행보관님과 커피를 마시며 상담을 하였다.
'가츠야~!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 응? 뭐가 불만이야? 요즘 힘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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