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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군대이야기도 21회째를 맞이하는군요. 그동안 유쾌하고 즐거웠던 소재를 위주로 이야기 구성해왔습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사실 전부터 할까말까 무수히 많은 고민을 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분명히 저의 군생활에 일부고, 평생 가지고 가야할 짐이기 때문에 용기내어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20편까지 발행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2000여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흔한 악플 하나없이 왔기에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이용해주세요!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이용해주세요!
2006년 1월 13일 금요일, 전날 저녁부터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렸다. 당시 우리 3소대는 경계전담이었다. 경계전담은 14회편에 자세히 소개하였다. 가츠군은 전날 경계전담으로 인해 5타임이나 근무를 나갔다. 고로 13일은 비번이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눈은 비로 변했고, 밤새내린 눈은 온세상을 새하얗게 만들어 버렸다.
비번이라고 좋아라했었는데, 하루종일 제설작업을 할 생각을 하니 짜증이 밀려왔다. 차라리 오늘 근무나갔으면 제설작업도 안하고 얼마나 좋아! 문득, 오늘 근무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오늘 근무팀을 보니 2분대 유일병과 양일병, 소본에 노일병과 천일병 등 죄다 나보다 짬이 안되는 녀석들이었다. 아~ 역시 군대는 운이 좋아야해되!
내심 금요일이고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비번이 된건데 비 맞으면서 하루종일 제설작업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아침 눈뜨자마자 점호도 인원만 확인하고 영외도로부터 제설작업을 나갔다. 제설작업을 한창하고 있는데 유일병과 양일병이 연대탄약고 투입을 위해 우리 곁을 지나갔다.
'아나 이색히들! 운겁나 좋아! 고참들은 비맞으면서 눈치우고 있는데! 빵실하게 근무나 나가고 아흑흐흑흐 부러워 ㅜㅜ'
'이기자! 하하~ 가츠일병님 고생하십시오~!'
영외도로가 어느정도 정리가 되자, 아침식사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취사장에서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연병장을 바라보았다. 캬하~ 답이 안나와~ 종일 치워야되겠구만~ 쩝쩝~! 식사를 마치고 쉴틈도 없이 대대 전병력은 연신 제설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정녕 하늘이 우리를 버리는 것인가? 내리는 비는 다시 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XX 저주받은 강원도! 고투더 헬! 셧더 팍!'
오전내내 제설작업을 한 보람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잠깐 내무실에서 얼은 손,발을 녹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보통 경계전담주에 근무가 있으면 대개 5타임정도 번갈아 투입되기 때문에 식사시간에 근무를 서는 인원들은 늦게 취사장을 가서 근무자 식사를 먹어야한다.
하지만 근무자들만 가서 먹기때문에 주로 라면을 가져가서 라면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오히려 선호하는 편이다. 얼마나 쉬고 있었을까? 유일병과 양일병이 근무자 식사를 마치고 소대로 돌아왔다. 양일병은 며칠전 정기휴가를 마치고 복귀하였기 때문에 오자마자 정신없이 바쁜 부대환경에 잘 적응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고, 휴가때 잘 놀고 왔나 싶어서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야 양일병! 휴가갔다오니깐 정신없지? 휴가때 머했어? 여자는 만났어? 어? 잼난거 없었어?'
'하하~ 가츠일병님도 참! 제가 여자가 어디있습니까? ㅜㅜ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다 왔습니다.'
사실, 양일병은 사단장관심병사였다. 신교대에서 훈련병 시절, 손목에 자해를 하며 자살기도를 하였다. 그래서 중대에서 소대배치 받을때, 간부나 분대장이나 너나할것없이 부담스러워 하였다. 훈련량이 많은 소총중대에서 자살기도한 병사가 왠말이냐? 낙오하면 갈궈서라도 데리고 가야되는데, 누가 이녀석을 갈굴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체력이 좋아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중대장님은 결국 분위기가 제일 좋은 3소대로 보냈고, 우리랑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다. 당시 기라성같은 고참들도 양일병에게는 언제나 친절했고, 잘해주었다. 사실 악질고참들도 강한 녀석들을 심하게 갈구지, 아니다 싶은 녀석들은 그냥 터치 안한다. 괜히 사고나서 엮이면 곤란하니깐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과는 다르게 양일병은 소대에 잘 적응했고, 우리들과 즐겁게 생활하였다.
그렇고 눈발이 다시 약해지자, 전 대대병력들은 다시 중대마다 맡은 구역으로 투입되어 제설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야~ 진짜 답 안나온다. 아침 6시부터 오후 해질녁까지 종일 눈만 치우고 있다. 정말 눈이 싫다. 아니 증오스럽다!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 저녁시간이 다되어간다. 간부들은 저녁먹기전에 끝내자며 재촉하였고, 우리들은 박차를 가해 어느덧 막바지 다다르는 순간! 대대지통실 문이 열리더니 교육장교가 무전기를 들고 뛰쳐나온다. 동시에 우리 5중대 행정반에서 소대장님이 뛰쳐나왔다.
아니, 곳곳에서 대대간부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소대장님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스피드로 위병소밖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나머지간부들은 주차장으로 달려가서 차에 시동을 걸어대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우리들은, 이거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남은 간부들은 병사들을 모두 내무실로 들어가서 대기하라고 지시했고, 우리는 내무실로 들어갔다. 내무실에서 고참들은 한마디씩 하였다.
'아나! 이거 또 연탄근무자 사고쳤구만! 뭔짓한거야! 대대장한테 자다가 걸린거 아냐? 그래서 대대장 전간부 호출한거 아냐? 아나 지금 근무자 누구야?'
'유일병이랑 양일병입니다'
'아나~ 이것들 불안한데..'
그렇게 남은 소대원끼리 이런저런 추론을 벌이며 대기하고 있는데, 소대장님이 2소대장님과 같이 들어오셨다. 긴장한 우리는 각잡힌 자세로 앉아서 소대장님을 바라보았다.
평소 부산사나이로서 항상 강인하고 장난끼 많은 소대장님이 대뜸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애들아... 양일병은 천국가겠지? 그놈은 천국갈 수 있겠지!'
그리고 우리 앞에서 엉엉 우시는게 아닌가? 지금 소대장님이 무슨 소리를 하시는거지? 천국가다니? 머지? 그렇게 전원 어리둥절 하고있는데 더이상 말을 잇지못하시는 소대장님 대신 2소대장님이 상황을 설명해주셨다.
'금일 17시경 양일병은 연대탄약고 근무중 포승줄로 목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하였고, 이를 발견한 유일병이 지통실에 보고하였다.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사망하였다.'
멍하다~ 지금 이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있는걸까? 불과 몇시간전에 나랑 웃으며 이야기한 녀석이 죽었단다. 멍하게 있는데 대대장님과 중대장님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군헌병대, 기무사, 사단에서 들이닥칠 것이니, 모두 마음 단단히 먹고 다같이 힘내야 된다고 하셨다. 사실 그런 조사따위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들이 믿든 안믿든 우리는 서로 떳떳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조사관들이 아니라 양일병의 부모님과 가족들이다. 그들도 연락을 받고 부산에서 올라오고 계시는 중이란다. 우리가 아무리 떳떳해도 그들을 당당하게 뵐 수 있을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벌써부터 두려웠다.
곧, 조사관들이 들이닥쳤고 우리는 당시 524ASP파견으로 비어있는 6중대 막사로 격리되었다. 조사관들은 우리들을 한명씩 불러내서 조사하였다. 얼마나 조사를 하였을까? 행보관님이 들어오시더니 양일병 부모님이 도착하셨단다. 그리고 우리를 만나고 싶다고 하시는거다.
내무실에서 전원대기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들어오셨다. 양일병은 부모님을 빼다닮았다. 부모님을 뵈니 양일병이 선명하게 떠올랐고, 부모님은 그저 우리앞에서 울기만 하셨다. 양일병 아버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 OO이 왜 죽었는지 아는 사람 없어? 왜 그녀석이 죽었는지 아는 사람 한명도 없어? 흑흑'
3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모르겠다. 그녀석이 왜 떠났는지? 무엇이 그를 그토록 힘들게 했는지? 그렇게 밤이 깊었고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도 우리소대원들은 격리되어 철저하게 조사를 받았고, 저녁이 되자 양일병이 있는 215병원에서 장례식 준비를 하는데 영안실 앞에서 근무 설 인원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내가 가겠다고 지원하였고, 노일병이랑 같이 지원을 갔다. 가니 이미 오전에 차출되어온 중대원들도 여럿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근무서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일반 초소 근무와는 다르게 영안실 근무는 흰장갑을 끼고, 절대 누구와도 대화하지말고, 사단장이 와서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말라고하였다. 시선은 전방만 바라보며 한치의 움직임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대신 힘들기 때문에 30분마다 교대한다면서 일단 쉬고 있으라고 했다.
그렇게 영안실 앞 간이 천막에서 1시간 30분 대기하고 30분 근무서기를 밤새 반복하였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후에는 영결식이 잡혀있었다.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다시 근무를 투입했는데, 대뜸 연대주임원사가 오더니 지금부터는 영결식 예행연습하고 바로 영결식이어서 할테니 더이상 근무교대하지 말고 나랑 노일병보고 계속 근무를 서라고 하였다.
'이런 XX! 30분만서도 온몸이 마비되는거 같은데 내리 풀로 서라고? 아나 진짜 이래서 융통성 없는 간부가 존내 싫다!'
그렇게 영결식 연습도 끝나고 본 행사가 시작되었다. 영결식하는동안 장내는 온통 눈물바다였고, 국악대의 연주가 시작되자 더욱 슬펐다. 나도 저기서 소대원들과 엉엉 울고싶은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감정이 복받쳐올라서 3시간째 서있었는데도 힘든지 모르겠다.
영결식도 끝났고, 조사도 끝났다. 조사관들은 단순자살로 판정내렸고, 유가족들도 수긍하였다. 그렇게 신속하게 사건이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다시 평소와 다름없이 일과를 보내며 생활하였다.
열흘 후, 병기본교육주라서 병기본교장에서 종일 교육을 받고 지친 몸을 이끌고 소대로 복귀하였다. 내무실 침상에는 귤상자가 덩그라니 놓혀있었다. 귤상자 위에는 한 통의 편지가 있었고, 선임분대장이 소대원들 다 모이라고 하더니 우리 앞에서 읽어주었다. 편지와 귤상자를 보낸 사람은 양일병의 누나였다.
'아직 우리 가족들은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만큼이나 힘들게 지낼 소대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여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처음에는 소대원들을 믿지 못했던 가족들도, 그간 보여준 소대원들의 행동에서 진심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못난 동생때문에 소대원들에게 너무 큰 누를 끼친거 같습니다. 이틀전 OO이가 묻힌 묘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슬퍼하지 않고, 너 보란듯이 잘 살아갈거라고, 덕분에 30명의 남동생들이 생겼다고 말이죠. 3소대 여러분!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다들 몸건강히 전역하셔서 부모님께 꼭 효도하시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편지를 읽어주는 선임분대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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