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레뷰에서 보내 주신 집들이 선물!"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다. 특히 외부행사가 있는 날에는 더욱 피곤하다. 집으로 돌아오니 관리실에 택배상자가 도착해 있었다. 얼마전 레뷰에서 보르도 와인 시음단을 모집하였는데 운 좋게 당첨된 것이다. 오자마자 시원한 냉장고에 넣어두고는 여친님께 전화를 하였다.
"와인 먹으러 와요!"
"보고만 있어도 즐거워!"
레뷰에서 총 다섯 종류의 와인 중 랜덤 발송이라고 하였는데, 나에게 배송 된 제품은 Château Rousselle 2004 (샤또 루셀 2004)이다. 와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에 여친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름 센스있게 안주도 미리 준비하였다.
"어서와요!"
"오오! 미리 셋팅해놨네?"
"잘했지?"
"어디보자! 이건 레드와인이잖아! 화이트와인 잔은 에러예요!"
"흑! 이 것밖에 없어요!"
"안주도 고기가 잘 어울리는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기특해요!"
역시 와인에 대해서는 여친님이 나보다 훨씬 전문가였다. 샤또 루셀 2004은 레드와인이기에 고유의 향을 음미하기위해서는 볼이 넓고 깊은 잔이 잘 어울린다. 잔 안에 충분히 향을 모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화이트와인의 경우에는 향이 비교적 단순하고 차갑게 마셔야 더욱 맛있기 때문에 볼이 넓은 잔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또한 미지근해지기 전에 빨리 마시기 위해 크기도 레드와인잔에 비해 작은 편이다.
"꼬뜨 드 부르!"
여친님께서는 친절하게 와인 라벨 읽는 법도 설명해주었다.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고, 종류 또한 다양하기에 라벨을 보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해야 된다. 라벨 속에는 와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르도시 북쪽으로 35km 떨어진 지롱드 하구의 우안에 위치한 꼬뜨 드 부르 (Côtes de Bourg)의 포도농장은 강가에 자리잡고 있어 일조량이 알맞다.
또한 토양은 주로 점토석회질로 되어 있고 하부토는 자연적인 배수가 용이한 구멍난 돌맹이로 되어있다.
점토석회질의 이 지역 토양에 적합한 메를로와 꺄베르네는 떼루아르의 장점을 살려 모든 여건을 만끽하며 만개하고 있다.
완벽한 자연환경 덕분에 우아하고 매혹적인 꼬뜨 드 부르의 레드 와인은 알콜이 풍부하고 힘차다. 아로마가 풍부하고 탄닌의 구조가 좋아서 장기 보관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또한, 꼬뜨 드 부르 와인은 매우 깊고 검은 기운이 도는 퍼플 색을 띄고 있으며 풀바디의 와인으로 설탕에 절인 작은 검은 과일의 향미를 발산한다.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와인은 장기보관에 적합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복합적이고 힘차면서 세련된 부케를 가진 와인으로 발전해 간다.
우아함이 특징인 꼬뜨 드 부르 와인은 흰살 고기, 붉은 살코기와 마시면 그 개성이 한껏 더 살아난다고 하는데 급하게 준비하는 바람에 안주 역시 어울리지 않아 아쉬웠다. 와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보르도와인 협회 공식사이트(http://www.bordeaux.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이정도면 충분해요!"
"잠깐! 그래도 분위기는 잡아야지!"
"푸핫! 센스쟁이!"
와인을 마시는 데 무드가 빠질 수 있겠는가?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예쁜 초를 준비할려고 하였지만 역시 없다. 급한대로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초를 켜고는 분위기를 잡아 보았다.
"아나! 이번에는 오프너가 문제였다!"
여친님께서 오프너를 손에 쥐고 힘차게 돌렸지만 와인 코르크는 당최 빠져나올 생각을 않았다. 뿅! 하는 순간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촬영할려고 하였으나 이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돌리면 돌릴 수록 코르크는 점점 가루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와인 코르크가 부식되었는 줄 알았는데 원인은 오프너에 있었다.
"시밤! 마데 인 차이나!"
메이드 인 차이나가 또렷하게 보이는 오프너는 불량 그 자체였다. 아예 제조과정부터 오프너로는 사용할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 회전갈고리 모양이 코르크에 박히는 것이 아니라 드릴처럼 열심히 구멍을 뚫게 하는 거였다.
"그럼 이거 못 먹는거야?"
"비장의 카드를 쓰는 수 밖에!"
"앜ㅋㅋㅋㅋㅋ!"
결국 우리는 코르크를 병 속으로 밀어넣고서야 와인을 음미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마셔야 되나 싶었지만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나니 기분이 싹 풀렸다.
포도의 탄닌과 오크의 탄닌이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며 라즈베리, 체리 등 다양한 과일향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레드와인답게 향이 풍부하고 긴 여운을 남기게 해주었다.
"자자! 한 잔 더 받으시오!"
늘 소주만 먹어서 그런지 레드와인 정도는 달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메를로 75%, 꺄베르네 쏘비뇽 20%, 말벡 3%, 꺄베르네 프랑 2%으로 구성된 샤또루셀 2004는 심하게 달콤한 제품은 아니다. 소주에 비하면 달다는 것이다. 문득 고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간이 안좋으셔서 옛날부터 음주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피치 못할 자리에서만 가끔씩 하셨는데 왠지 샤또루셀 2004라면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드셔도 괜찮을 듯 하였다. 다가오는 추석에 꼭 한 병 선물해드려야겠다.
"미친 소! 아니죠! 웃는 소! 맞습니다!"
그나마 치즈가 샤또루셀 2004와 제일 잘 어울렸다. 평소 와인을 자주 마시지 않기에 관련 지식이 많이 부족하였다. 그러다 보니 좌충우돌 시음기가 되어버렸는데,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해주신 여친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또한 맛있는 와인을 보내주신 레뷰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렇게 빛의 속도를 한 병을 비우고는 늦기 전에 여친님을 집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왔다. 문득 방바닥에 나뒹구는문제의 오프너를 보자 다시 울컥하였다.
악랄가츠님이 오프너님을 강퇴하셨습니다!
반응형
'가츠의 식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리뷰이야기, 임페리얼 퀀텀 下편 (54) | 2010.12.07 |
---|---|
가츠의 리뷰이야기, 임페리얼 퀀텀 上편 (74) | 2010.11.24 |
가츠의 식탐이야기, 비타민하우스 비타민워터! (93) | 2010.08.01 |
가츠의 식탐이야기, 스테파니카페 (200) | 2010.06.07 |
가츠의 식탐이야기, 참치볶음밥 (228) | 2010.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