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글보기
"몇 시까지 가면 되나요?"
"기왕이면 일찍 오셔서 같이 점심해요! 연아 경기도 보구요!"
통화를 마치고, 작성해놓은 문서의 인쇄하기를 클릭하였다. 신나게 문서가 인쇄되는 동안,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태웠다. 벌써부터 초조하고 떨린다. 한편으로는 설레이고 기대되기도 하였다.
"국방부에서는 투스타와 같이 소변도 본다던데!"
오늘의 목적지는 국방부이다. 군 시절, 대위였던 중대장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중령이었던 대대장은 신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군의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에서는 일반 병사들만큼이나 많은 계급이 중령이었다. 사회에서는 희소성의 원칙이 존재한다. 500여명이 생활하는 대대에서 한 명뿐인 중령과, 국방부에서 만나는 중령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가끔 전군 지휘관 회의라도 열리면, 투스타급 이상의 장군들의 도열 또한 볼 수 있는 곳,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대략 이런 느낌이랄까?"
사단장은 감히 앞 줄에 서지도 못한다. 아니 이등병처럼 부동자세로 각 잡고 있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일개 병사로 전역한 내가 국방부의 초청을 받아 발표를 하러 간다. 현역 시절,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나는 대대의 아니 사단의 영웅이 되었을텐데, 생각해보니 아쉬울 따름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혼자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미친 사람 마냥 실실 웃고 있었다. 어느새 삼각지역에 도착하였고, 국방부를 향해 발걸음을 향하였다.
"안녕! 문 좀 열어줄래?"
"뭥미? 누구십니까?"
"왜 이래! 나 악랄가츠야! 몰라?"
"모릅니다! 그럼 전 악랄헌병이지 말입니다!"
이랬을리가 없다. 나는 근무 중인 헌병들의 심기를 최대한 거슬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사뿐사뿐 걸어갔다. 안내데스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곧 정책홍보과 직원분들이 나를 데리러 왔다. 마침 점심 시간이었기 때문에 근처에서 맛있는 부대찌게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국방부에서는 여러 개의 군관련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대표적인 블로그로는 동고동락이 있고, 그 외에도 열혈3인방, 박대위의 말뚝 3년차 등이 있다. 오늘은 열혈3인방, 아니 조만간 열혈국방부로 바뀐다고 한다. 암튼, 열혈3인방에는 공무원 팀블로그가 있다. 이번에 2기 인원들이 새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나는 그들에게 블로그 노하우를 발표하러 온 것이다.
"공무원들이면 나이가 많겠네요?"
"그렇지 않아요! 다들 파릇파릇한 20, 30대랍니다!"
"중앙부처는 7급 이상 근무하잖아요!"
"고시 출신도 있고, 여튼 다양하답니다!"
"헐? 이상한 거 물어보지는 않겠죠? 저의 강의는 전혀 깊지 않다구요!"
"걱정마세요! 재미있을 거예요! 후훗!"
식사를 마치고, 정책홍보과로 들어갔다. 화이트보드에는 귀여운 케릭터가 나를 반겨 주었다. 홍보과다 보니, 직원 분들이 한결같이 미인이고 훈남이셨다. 역시, 홍보는 인물이 출중하여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몇몇 분들은 지난 번 워크샵에서 뵈었기에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연아님 경기 시작!"
"오오오오! 작업 중지! 작업 중지!"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신속하고 빠른 속도로 직원 분들이 TV 앞으로 모였다. 나 역시, TV 앞에 자리잡고는 두 손 모아 기도하였다.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하나 되어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세...세계신기록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천지가 흔들리는 환호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아마 휴전선 철책을 따라 파도타기 하듯이 군 장병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거 같았다. 결국 이 시간, 제일 불쌍한 사람은 경계근무 중인 장병들일 것이다. 지지리 복도 없는 녀석들이다. 그래도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안심하고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
바로 옆 사무실이 대변인실이었는데, 대변인도 밝게 웃으며 들어왔다. 역시 기쁜 소식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되지 않겠는가? 항상 TV로만 본 대변인을 직접 뵈니, 무척 신기하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찰나, TV에서는 다음 주자인 마오가 나왔다.
"마오! 울면서 나온다! 앜ㅋㅋㅋㅋㅋ"
"마오는 멘탈이 약해서, 지금 그냥 집에 가고 싶을껄!"
기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김연아의 압승으로 게임은 끝났다. 다시 직원들은 제자리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고, 나는 발표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국방부 탐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곳곳에서 헌병들이 철벽 경계를 하고 있었기에 행동반경은 제약적이었다.
"와우! 폭풍간지!"
간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부터가 극강이었다.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먼 발치에서 구경만 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가 나의 눈에 낯익은 장면이 들어왔다.
"어...어라? 이 곳은?
"TV에서 자주 보던 곳이야!"
항상 군관련 뉴스가 나오면, 그 배경이 되는 곳이다. 브리핑룸 맞은편에는 기자실도 있었다. 기자실에서는 각종 언론사에서 파견나온 출입기자들이 모여 TV를 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말이다.
"내가 밴쿠버 갔어야 했어! 갔어야 했어!"
"오호 빛난다! 설마 여기서 발표하는 건 아니겠지?"
"아 가츠씨 마침 여기 있었네요! 이제 슬슬 발표 해야죠!"
"헐! 여기서요?"
"그럴리가요! 왜 이래요 아마추어같이!"
"이런 분위기 좋아!"
방금 브리핑룸을 보고 온 탓일까? 한결 조촐한 분위기에서 오순도순 모여 발표를 하였다. 지난 컨퍼런스나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길어봐야 30분 가량 발표를 하면 되었는데, 이번에는 자그마치 2시간이나 계획되어 있었다. 미리 준비하면서 할 때는 대략 1시간 30분 가량 분량이 나왔다.
최대한 천천히, 부연설명을 추가하며 발표를 하면, 얼추 시간이 맞을 거 같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시작과 동시에 머릿속은 또 새하애졌고, 멘트는 속사포마냥 무서운 속도로 내뱉기 시작하였다. 발표가 끝나자, 역시 시간이 꽤나 남았다. 나는 시계를 확인하며 애써 호탕하게 웃었다.
"원래 일찍 마치면 좋잖아요! 난 정말 배려심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야! 우하하!"
추천 쾅
반응형
'가츠의 옛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옛날이야기, 안마방 下편 (205) | 2010.03.25 |
---|---|
가츠의 옛날이야기, 안마방 上편 (178) | 2010.03.24 |
가츠의 옛날이야기, 입학식 (148) | 2010.03.02 |
가츠의 옛날이야기, 국민권익위원회 (165) | 2010.02.22 |
가츠의 옛날이야기, 내기 下편 (188) | 2010.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