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오너라!"
바야흐로 완연한 봄날씨이다. 때마침 낙성대공원에서 사극 촬영이 잡혀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나들이 삼아 냉큼 출동하였다. 촬영장에 도착하니 주연배우로 보이는 듯한 남성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근데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이다. 지금부터 그의 정체를 낱낱히 파헤쳐 보자!
"우리 가츠 왔어!"
"혀어엉! 진짜 장가 가는구나!"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의 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하얼빈의 대학교로 진학을 하게 된 나는 기숙사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나랑 한 살 터울이었던 선배는 유난히 까탈스런 성격을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이내 처해진 환경에 순응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선배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 알고보니 선배는 무척 따뜻한 남자였다. 물론 지난 10년 동안 몇 번 느끼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세상을 다 가진 남자!"
그런 선배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대학교 선후배가 총출동하였다. 아직까지 현역으로 복무 중인 막내부터 나름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하겠다면 하얼빈에서 몰래 날아온 녀석까지 그렇게 결혼식장은 대학교 동문회장으로 변신하였다.
과거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음주가무를 즐기던 술고래 선배들이 하나같이 천사같은 아가들을 데리고 와서는 결혼식이 끝남과 동시에 칼퇴장하는 모습은 실로 나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가정에 충실한 남자로 거듭나고 있었다. 사랑스런 아가들만 없었다면 그들의 파란만장한 과거를 형수님들께 신랄하게 폭로할려고 하였는데 진심 아쉬웠다.
그나저나 지금부터는 오늘의 진짜 주인공을 만나 볼 차례이다. 불쌍한 선배를 가엽게 여기시어 손수 거두어 주신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소개하는 바이다.
"제 아무리 꽃과 나비가 아름답다 한들 그대만 하리오!"
형수님과 마주한 순간 문득 선배가 범죄자처럼 느껴졌다. 행여 꼬투리라도 잡힌게 아닌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형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만큼이나 고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정말 예뻐도 너무 예뻤다.
"풍물패의 흥겨운 무대!"
본격적인 혼례에 앞서 풍물놀이패의 신명나는 무대가 펼쳐졌다. 매번 결혼식에 참석하면 빠듯한 시간에 쫓겨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과는 달리 전통혼례는 참석한 하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즐길 수 있는 흥겨운 축제 한마당이었다.
"결혼식의 하일라이트! 신부 입장!"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새삼 그가 진짜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선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기요! 아직 시작도 안했거든요!"
누가 천생연분 아니랄까봐 신부는 가마에서 내리자 마자 백만불짜리 미소로 선배를 넉다운 시켜버렸다. 선배 역시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어깨가 들썩거렸다. 이거 분위기만 보면 당장이라도 첫날밤을 보내러 갈 기세이다.
(1) 壻至東席 : 신랑이 초례청 동편 자리에 들어선다.
(2) 姆導婦出 : 신부의 시자가 신부를 부축하여 나오는데 흰 천을 깔아 놓은 바닥을 밟고 나온다.
(3) 壻東婦西 : 신랑은 동쪽, 신부는 서쪽에서 초례청 앞에 마주 선다.
(4) 進灌進洗壻灌于南婦灌于北 : 신랑이 손씻을 물은 남쪽, 신부가 손씻을 물은 북쪽에 놓는다.
(5) 壻婦各洗手拭巾 : 신랑 신부는 각자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는다.
(6) 婦先再拜 : 신부가 먼저 두번 절한다.
(7) 壻答一拜 : 신랑이 한번 답례한다.
(8) 婦又再拜 : 신부가 다시 두번 절한다.
(9) 壻又答一拜 : 신랑이 다시 한번 절한다.
(10) 壻揖婦各机坐 : 신랑이 신부에게 읍하고 저마다 무릎을 꿇고 앉는다.
(11) 侍者進饌 : 시자가 술잔을 신랑에게 건넨다.
(12) 侍者各沈酒 : 시자가 잔에 술을 다른다.
(13) 壻揖婦祭酒擧肴 : 신랑은 읍하고 술을 땅바닥에 조금 붓고 안주를 젓가락으로 집어 상 위에 놓는다.
(14) 又沈酒 : 시자가 신랑 신부 술잔에 다시 술을 붓는다.
(15) 壻揖婦擧飮不祭無肴 : 신랑은 읍하고 신부가 술을 마시되 안주는 먹지 않는다.
(16) 又取근壻婦之前 : 표주박을 신랑 신부에게 건넨다.
(17) 恃者各沈酒 : 시자가 표주박에 술을 따른다.
(18) 擧杯相互壻上婦下 : 신랑 신부는 술잔을 서로 바꾸는데 신랑 잔은 위로, 신부 잔은 아래로 하여 바꾼다.
(19) 各擧飮不祭無肴 : 서로 바꾼 술잔을 마시는데 땅바닥에 기울여 쏟지 않으며 안주도 들지 않는다.
(20) 禮畢撤床 : 예를 끝내고 상을 치운다.
(21) 各從其所 : 신랑 신부 저마다 처소로 돌아간다.
"만감이 교차하시는 부모님!"
혼례를 묵묵이 지켜보고 계시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진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어쩌면 오늘의 신랑, 신부보다도 지금 이 순간이 훨씬 더 소중하고 남다르기 때문이다.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 준 소중한 아들, 딸을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깊은 마음을 어찌 장가도 안간 내가 알겠는가!
"예쁜 형수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아야 돼!"
이상으로 나를 포함하여 여태 장가를 가지 못한 후배들의 부러운 시선과 이미 가장이 된 선배들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조화롭게 어울려진 혼례식장의 훈훈한 풍경이다. 아무쪼록 하루 속히 사랑스런 조카 소식을 들려주시기를 희망하며 형 진짜 진짜 축하해!
그렇게 선배는 대한민국 공식 유부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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