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글보기
오늘은 지난주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언제나 사건의 발단은 한 통의 낯선 전화에서 시작된다. 지난 주, 바쁜 서울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동안 밀린 댓글에 답변을 하느라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인게 전부였기에, 무척이나 피곤하였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기 시작하였다. 따르릉~♪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악랄가츠님이세요?"
상큼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피곤함도 잊은 채, 급 가식모드로 돌변하여 상냥하게 대답하였다. 나의 본명이 아니라, 닉네임을 말하는 걸로 보아, 블로그와 관련이 있는 분이신가보다. 혹시, 나의 팬인가? 설마 고백을 할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말이다. 또 혼자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제가 악랄가츠입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반가워요! 저는 국군방송 KFN 라디오 작가 한보람이랍니다!"
"국...국군방송이요?"
"네네! 다름이아니라 가츠님을 섭외할려고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지저스 크리스마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송출연이라? 내가? 생각지도 못해 본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되나? 잠시 고민하였지만, 재미있겠다 싶어서 관련 자료를 보내주시면 살펴보겠다고 하였다.
"음...뭔가 굉장해보여!"
그녀가 건네 준 자료를 받아서 검토해보니, 무척 부담스러웠다. 나의 방송분량도 15분이나 되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역시 나의 생각을 읽은걸까? 다시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급 소심해진 나는 그녀에게 칭얼거리기 시작하였고, 그녀는 자기만 믿으라고 하였다. 예상 인터뷰 질문지를 보내줄테니, 한번 작성해보라고 하였다.
그녀가 보내준 인터뷰 질문지에는 10개의 질문이 있었다. 하나 하나 작성을 해나갔다. 문득 작성을 하고보니, 비방용 멘트가 난무하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터뷰 대사 뒤에 붙어 있는 인터넷 용어들.
"앜ㅋㅋㅋ, 어흐흑흑ㅜㅜ,존내, >.<"
내가 작성하고도 정말 한심하였다. 이걸 말로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지우고 수정하기를 수차례, 완성된 인터뷰를 보자, 정말 웃음기 싹 뺀 방송용 인터뷰가 완성되었다. 이대로 보내면, 그녀가 실망하실텐데, 웃긴 짤방이라도 몇 장 첨부할까 싶었지만, 맞을 거 같았다.
인터뷰 대본을 메일로 보내고, 소심하게 문자를 보냈다. 잠시후 작가는 이정도면 괜찮다고 하였다. 그러고보면 애시당초 나에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는 거 같다. 정말 평범하게 작성하였는데 말이다. 하긴, 예능이 아니잖아! 나름 국방안보시사프로그램인데 말이다.
다음날, 방송을 하기위해 발음 연습을 하며,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상하게 혀는 짧지 않은데, 자꾸 발음이 샌다. 왜 그런걸까? 군대에서도 고참들이 놀리곤 하였는데, 여간 고쳐지지가 않았다. 부정확한 발음과 표준어와 사투리의 애매모호한 경계선에 놓여져 있는 말투가 고질적인 문제였다.
"작가님! 저 방송사고 칠 거 같애요!"
"괜찮아요! 잘하실 거면서!"
나는 평소 정말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도 만만치 않았다. 새침하면서도 무척이나 예의바른 그녀는 오히려 나를 능가하는 거 같았다. 방송이 코 앞인데 전혀 걱정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새삼 멋있어 보였다. 생방송 프로그램이지만, 나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에, 전날 녹음을 하기로 하였다. 녹음이라고 해도, 방송 시작 전에 잠깐 짬을 내서 하는거기 때문에 틀려도 재녹음을 못한다고 하였다. 따지고 보면 생방송과 다를바 없었다.
"가츠님 지금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파이팅!"
"파...파이팅! ㄷㄷㄷ"
그렇게 그녀의 응원을 받으며 나의 데뷔 방송은 시작되었다. 14분동안 어떻게 지나갔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강영희 아나운서의 뛰어난 진행 덕분에 무사히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멘트까지 마치고나자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방송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막상하고나니,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왠지 이대로 짤릴 거 같았다. 데뷔 방송이자 고별 방송이랄까? 잠시후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소심하게 전화를 받았는데, 그녀는 괜찮다며 다음주부터 계속 출연하자고 하였다. 오호 흔히 연예인들이 말하던 고정을 따낸 것인가?
다음날, 부모님과 같이 방송을 듣기로 하였는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집에서는 국군방송 주파수가 잡히지 않는 것이다. 뭥미?
다행히 국방홍보원 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청취할 수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고, 부모님은 바른 자세로 앉아서 스피커에 귀를 기울어셨다. 곧 방송이 시작되자, 어머니는 배를 잡고 깔깔거리시기 시작하였고, 아버지는 방송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계셨다. 나는 연신 오그라든 손발을 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들! 저 가식적인 웃음은 어쩔?"
"얼씨구 말투는 또 왜 이래? 기껏 중국유학 보내줬더니, 중국어도 못해요 한국어도 못해요! 갑갑하다!"
"엄마 아빠! 미워! 어흐흑흑ㅜㅜ"
그렇게 나는 울면서 집을 뛰쳐나갔다.
방송내용이 궁금하실까봐 준비해보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으시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으신 분은 그냥 넘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욕하실지도 몰라요. 진심이예요!
반응형
'가츠의 군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군대이야기, 전투사격 上편 (211) | 2009.11.25 |
---|---|
가츠의 군대이야기, 지뢰 (253) | 2009.11.23 |
가츠의 군대이야기, 취사지원 下편 (227) | 2009.11.18 |
가츠의 군대이야기, 취사지원 中편 (208) | 2009.11.17 |
가츠의 군대이야기, 취사지원 上편 (263) | 2009.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