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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에 낯선 우편물이 들어있었다. 뭔가 싶어서 확인해보니, 샘터에서 보낸 우편물이었다. 포장을 열어보니 8월호 샘터, 2권이 들어 있었다.
문득, 몇해전 신병교육대에 있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거리에는 박효신의 눈의 꽃이 울려퍼지고 있을 무렵, 나는 강원도 깊은 산 속의 낯선 신병교육대에서 대한민국 육군 훈련병의 신분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끝없이 내리며 우릴 감싸온 거리 가득한 눈꽃 속에서~♪ 우리는 죽어라 눈만 치웠다. 평일에도, 휴일에도 예외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설연휴가 찾아왔다. 다행히 매일같이 내리던 눈은 첫날에 조금 내리더니 다음날부터 내리지 않았고, 훈련병인 우리는 하염없이 내무실에서 3박 4일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조교들은 자신들의 내무실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드라마였던 쾌걸춘향를 보느라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고, 우리들은 눕지도 못하고 그냥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얼마후, 나의 시선은 내무실 책장을 향하였다. 거기에는 평소에 한번도 보이지 않던 샘터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권, 두권, 세권 쉴새없이 읽어나갔다. 시, 시조, 수필, 소설등 다양한 문학작품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재밌게 보던 부분은 청춘스케치였다. 각 권마다 두 세편의 군대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아직 이등병 계급장도 받지 못한 나에게 책 속의 군대이야기는 설레임, 두려움,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저자들은 현역 군인도 있었고, 예비역도 있었고, 군에 아들을 보낸 아버지도 있었다. 감동이 있는 글, 유머가 있는 글, 때로는 한없이 슬픈 글도 있었다. 군대이야기에는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스며 들어 있었다.
한달 후, 나도 이 글의 주인공이 되겠지? 그렇게 정신없이 책을 읽다보니 설연휴가 끝났고, 다시 훈련이 시작되었다. 힘든 훈련 속에서 가끔씩 나는 그때 읽었던 글들을 생각하며, 정말 글이랑 똑같잖아? 세상에는 수많은 문학 작품이 있지만, 대다수는 작가 고유의 창작세계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군대이야기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가 있다. 우리 아버지도 되었고, 형도 되었고, 동생도 될 수 있다. 때로는 주인공보다 빛나는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얼마나 현실적인가?
한달전,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샘터에서 온 메일이었다. 얼마전 작성하였던 발냄새편을 샘터에 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순간 지난날 신교대 내무실에서 샘터를 읽던 측은한 훈련병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혼쾌히 승낙하였고, 어제 나의 글이 실린 샘터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아니 전국의 각 부대로 배달되었을 것이다. 몇해전, 내가 그랬듯이 지금 어딘가에서 훈련받고 있는 많은 훈련병들은 이 책를 읽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에 훨씬 와닿는 군대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말이다.
오늘, 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샘터를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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